구간 : 천왕봉 → 성삼재(28.13㎞)
접근 : 백무동 → 천왕봉(8.5㎞)
시간 : 16시간 30분
대원 : 오상기, 황정곤 외 1명


02:05 백무동매표소 → 04:55 장터목 ( 장비정리 ) → 05:25 출발 → 06:15 천왕봉 ( 백두대간 시산제 ) → 07:15 장터목 ( 아침 ) → 07:45 출발 → 08:55 세석산장 ( 휴식 7분후 출발 ) → 10:55 벽소령 ( 점심 ) → 11:35 출발 → 13:00 연하천 ( 휴식 ) → 13:15 출발 → 14:38 토끼봉 → 15:02 화개재 → 15:30 삼도봉 ( 휴식 ) → 15:40 출발 → 17:40 노고단 대피소 ( 장비정리 및 휴식 ) → 18:00 출발 → 18:35 성삼재


백리길 눈꽃산행
참으로 어렵게 출발한 백두대간이다.

산에 다닌지 이십년하고도 몇 년이 지났지만 차일피일하다 이제사 대간능선을 밟는게 죄스러움반 설레임 반이다.

어쨌든 처음하는 지리산 종주도 아니건만 대간길 첫구간이라 생각하니 느낌이 전혀 다르다.

추운 새벽 백무동 매표소를 출발하여 서서히 몸을 데우는데 컨디션이 별로다. 간밤에 잠을 설쳤더니 몸이 무겁다. 이제 시작인데 걱정이다. 오늘따라 소지봉 가는 길이 꽤 멀리 느껴진다. 한 땀을 흘리고서야 하동바위다. 이어서 지릉에 붙으니 한결 몸이 가벼운 느낌이다. 날씨는 바람이 정면으로 불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망바위까지의 부드러운 길을 지나 장터목으로 가는 제석봉 옆길은 굴곡심한 바위길에 눈까지 쌓여 운행이 조심스럽다. 장터목에 도착하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잠시 땀이 식고 다시 나서려니 온몸에 한기가 든다.

제석봉 오름길 초입 오르막을 지나 옆 사면 길엔 북쪽 칠선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섭도록 몰아친다. 새벽 5 시 30 분쯤 칠흙 같은 어둠에 인적도 끊긴 나무하나 없는 제석봉. 우리들은 거칠 것 없는 바람에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통천문 못 미쳐 잠시 길이 헷갈린다. 외길인 듯 해도 어둡고 흔적 없는 길을 제대로 찾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약 10 분 정도 길을 헤메다 다시 길을 찾아 나선다. 통천문지나 드디어 천왕봉. 새벽 2 시 에 올라 약 4 시간만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감격스럽다. 하지만 천왕봉 칼바람은 사람 몸을 벨만하다. 간단하게 백두대간 시작을 고하고 서둘러 장터목으로 향한다.

장터목에서 아침요기를 마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지리산 종주다. 연하봉주위엔 눈바람이 흩날리면서 묘한 기운이 감돈다. 삼신봉을 지나 촛대봉. 이어서 세석평전. 여기서 휴식을 취하며 영신봉을 올려다보니 때마침 햇살에 눈바람이 은가루처럼 흩날리며 장관을 이룬다.

영신봉지나 가파른 내림계단. 그리고 수많은 오르내림의 무명봉들을 지나니 어느새 선비샘이다. 여름이면 생명수를 내뿜는 이곳도 한겨울엔 휑하게 드러난 돌밭 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덕평봉을 왼쪽으로 돌아 재에 내려서니 반가운 벽소령 옛길이다. 임도처럼 부드러운 빨치산 토벌로를 지나 벽소령 대피소에 닿으니 햇살이 한결 따스하다.

벽소령이면 주릉길 약 반쯤 된다. 지금까지는 발걸음도 가벼웠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삼정산 능선이 만나는 삼각고지 오름길이 만만찮다. 여기서 연하천까지 평원길이 제법 길게 느껴진다. 연하천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에 시원한 맥주 한모금 하면서 잠시 몸을 녹이고 다시 출발이다.

잘 놓여진 나무계단을 벗어나니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토끼봉 직전 1463 봉이다. 오늘따라 토끼봉 오르는 길이 너무 힘들다. 완만한 듯하면서도 길고 가파르다. 먼 길을 걸어온 터라 더 힘겹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끼봉에 오르니 전에 못 보던 목책이 놓여있다. 반야봉 전망대 토끼봉엔 눈바람이 몰아쳐 보이지 않는다.

화개재까지 단숨에 내려서니 뱀사골에서 불러오는 눈바람이 꼭 새벽녘 제석봉 바람처럼 맵다. 북풍한설이다. ‘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눈바람 ' 몸을 잔뜩 낮추고 화개재를 비켜나지만 눈보라는 사정없이 때린다. 삼도봉 계단길 아래에서 쉼호흡 크게하고 한번도 쉬지 않고 올라서려니 악에 받치는 느낌이다. 정말 질리는 계단길이다. 그래도 삼도봉만 오르면 더 이상 큰 오름은 없다.

하지만 삼도봉을 지나 노루목 삼거리를 지나니 이제부터는 부드러운길도, 내림막 길도 모두 힘들다. 임걸령지나 돼지평전까지의 지리산 주릉 중 가장 부드러운 이 길도 너무나 힘겹다. 눈쌓인 겨울에 지리산 종주를 당일에 헤내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가 ?

돼지평전에 서니 노고단 왼쪽으로 저녁놀이 진다. 이제 노고단만 돌아서면 오늘산행은 거의 끝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돼지평전에서 노고단 가는 길이 이렇게 멀 줄이야 가도가도 끝도없는 길처럼 느껴진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에 돌아서니 그제서야 노고단 돌탑이 보인다. 이미 해는 지고 바람은 더욱차다. 성삼재 까지 미끄러운 길을 재촉한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6 시 30 분. 약속한 택시가 빨리 오지 않는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성삼재 바람피할곳하나 없다. “ 덜덜덜 ” “ 아유춥다 ” 택시불빛이다. 동태가 되기직전이다. 아 !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 16 시간 20 분의 1 차구간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쳤다.


구간 : 성삼재 → 중재, 1소구간 - 성삼재 → 매요리, 2소구간 - 매요리 → 중재
거리 : 53㎞
시간 : 20시간 10분, 1소구간 - 11시간 10분, 2소구간 - 9시간
대원 : 오상기, 황정곤 외 1명


2월 28일
07:20 성삼재 → 09:00 만복대 → 09:35 정령치 (10분 휴식 후 09:45 출발 ) → 10:05 고리봉 → 11:10 고기리 → 11:50 노치샘 ( 가재마을 ) → 12:20 점심후 출발 → 13:00 수정봉 → 14:30 여원재 → 14:55 장비점검 및 휴식후 출발 → 17:00 고남산 → 18:30 매요리
2월 29일
06:10 사치마을 → 06:20 사치재 → 08:10 시리봉 → 09:00 아막성터 → 09:30 복성이재 → 11:00 봉화산 1 봉 → 11:20 봉화산 → 11:55 점심후 출발 → 13:35 광대치 → 14:10 월경산 → 15:00 중재 → 15:15 중기리


2월 28일
지난달 25 일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한달여 만에 이번구간 들머리인 성삼재에 도착하니 기분이 새롭다. 아직 2 월의 지리자락인데도 날씨는 겨울을 훌쩍 넘어선 것 같다. 작은 고리봉 오름길의 키 작은 억새가 지리본릉과는 자못 다른 풍광을 예고한다. 길은 군데군데 얼어있어 주의를 요하지만 대체로 부드러운 능선이라 함은 들지 않는다.

묘봉치를 지나면 만복대 억새군락이 황량한 겨울에도 장관을 이룬다. 탁 트인 전망에 반야봉이 달궁을 건너서 있고 북쪽으로 오늘 우리가 가야할 수정봉과 고남산이 도열해있다. 만복대는 바람이 거세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정령치로 내려서니 선답자 6 명이 막 출발준비를 하고있다.

정령치에는 백두대간개요가 그런대로 잘 표시되있다. 1 대간 1 정간 13 정맥을 그림으로 설명해 놓았다. 정령치에서 큰고리봉까지는 고도차 130 정도이며 20 분이면 충분하다. 큰고리봉을 내려서면 이제 지리산 주릉은 끝이다. 아쉽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정 백두대간의 첫 시작인 셈이다. 그동안 수십번이나 오르내렸던 지리산자락에서 처음으로 벗어나 미지의 길을 간다는 것이 설레인다.

큰고리봉에서 북쪽 내림길엔 온통 얼음판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젠을 찼지만 우리 셋은 그냥 진행한다. 그래도 우리가 속도가 더 빠르다. 길은 계곡길로 빠지는 듯 하여도 내려서보면 능선임을 알수있다. 고즈넉한 소나무숲을 지나 비탈을 내려서니 정령치로 오르는 포장도로와 만난다. 헌데 날씨가 갑자기 소란스럽다. 포장길 따라 몇 걸음 못가서 비가 제법 흩날린다. 겉옷을 꺼내 입고 노치부락으로 올라서니 가재마을이 북으로 나있다.

이곳사람들은 “ 가재 ” 라 부르지 않고 노치부락이라 부른다. 노치샘터 구판장에서 간단히 막걸리 한잔에 라면을 끓여먹고 수정봉으로 올라서니 정갈한 소나무와 바닥에 깔린 깔비가 너무 좋다. 수정처럼 맑은 산길이다. 때묻지 않은 소나무터널을 1 시간 40 분 올라서니 수정봉 삼각점이다. 여기서 잠시 황산벌을 조망하고 저멀리 북서쪽으로 고남산을 확인한다. 산길 방향이 도상과 약간 다른듯하나 대체적 방향은 틀림이없다.

이름도 기묘한 입망치를 지나 멋진 암봉을 오른쪽으로 벗어나니 이내 여원재 다. 여원재에서 뜻하지 않게 발뒷굼치가 까졌다. 새로 장만한 신발때문이다. 간단한 조치를 하고 진행이 어려웠지만 계획대로 고남산을 오른다. 하지만 오를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 심해 결국 정상을 30 여분 못미쳐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고 오른다. 처음엔 시원한 느낌에 좋았지만 발이 젖으면서 이제는 너무추워 동상에 걸릴 지경이 되어 고남산 정상에서 또다시 신발을 신는다.

그래도 다행히 이제부터는 큰 오르막없이 내림길이다. 하지만 고남산에서 유치고개를 지나 매요리 까지의 길이 만만찮다. 중간에 빠지고싶은 유혹을 어렵게 뿌리치고 드디어 매요리에 도착하니 가슴속에서 뿌듯함이 밀려온다.

2월 29일
어제의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지만 새벽산길에 붙으니 이내 기운이 솟는다. 사치고개엔 산림청에서 만들어 놓은 이정표에 복성이재까지 4.8 키로미터로 적혀있길래 1 시간 30 분이면 충분할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3 시간이나 걸렸다. ( 사실을 확인해보니 약 8 키로미터임 )

사치재에서 곧바로 치고 오르면 679 봉이다. 능선미가 일품이다. 하지만 산불로 숲이 훼손되 한여름 뙤약볕엔 땀께나 흘릴 것 같다. 하지만 새벽녘 먼동이 틀무렵의 능선길은 가히 낭만적이다.

새맥이재를 지나 시리봉 오름길은 어제구간의 수정봉처럼이나 맑고 상쾌하다. 참 아름답다. 물기 머금은 소나무 깔비길을 밟노라면 발바닥에서 가슴까지 시원한 느낌이 전해온다. 시리봉을 지나 10 여분도 안가서 주릉을 버리고 오른쪽 지릉길로 빠진다. 시리봉에선 지릉이지만 대간길로 볼때는 이게 본릉이다.

길은 갑자기 잡목이 우거져 운행하기가 불편하다. 병풍처럼 멋지게 솟아있는 큰 바위를 오른편으로 돌아 무명봉에 올라서니 우리가 가야할곳에 아막성터가 한눈에 보인다. 제법 큰 성터다. 그옛날 백제와 신라가 “ 거시기 ” 하던 황산벌성터다. 아막성터 부근엔 두릅나무가 군락을 이루고있다. 봄날 대간꾼에겐 더없이 좋은 간식거리가 될 듯 싶다. 지금은 훼손이 심하지만 그런대로 산성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막성터에서 30 분 남짓 내려서면 복성이재다.

장수군 복성이마을 윗 고개 복성이재에 도착하니 대간꾼 6 명이 막 도착한다. 그들도 중재까지 끊는다 하니 날머리는 같은셈이다. 이제 봉화산만 치고 오르면 큰고비는 없는듯하다. 하지만 복성이재에서 봉화산까지의 길이 결코 만만찮다. 진달래봉을 힘겹게 올랐다가 치재를 지나 봉화산 아래까지 가는데만도 시간이 제법 소요된다. 날씨는 완연한 봄날이다. 햇살이 너무 따스하다. 봉화산 남봉만 올라서면 다 온 셈이다. 이후부터는 부드러운 능선이다.

봉화산에 올라서니 조망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지나온 길 ( 지리산하봉 - 중봉 - 천왕봉 - 제석봉 - 촛대봉 - 삼도봉 - 반야봉 - 노고단 - 만복대 - 고리봉 - 수정봉 - 고남산 - 시리봉 ) 과 가야할 길 ( 월경산 - 백운산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이 한눈에 들어오며 주변에 장안산 , 괘관산까지 거침이 없다.

억새군락으로 뒤덮힌 봉화산을 지나자 마자 970 봉에 서면 동쪽으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는 도계능선이 보인다. 이어서 광대치까지는 표고차가 100 미터를 넘지 않으면 중간 중간에 암릉이 걸려있어 당일 워킹산행지로는 기가 막히는 곳이다.

광대치 고갯길은 옛길이다. 지금은 함양쪽으로만 흔적이 있을 뿐 장수쪽으론 넘질 못한다. 광대치에서 마지막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비로소 오늘의 마지막 봉인 월경산이 눈앞에 보인다. 그래도 제법 만만찮은 거리다. 월경산은 대간길에서 약 3 분정도 벗어나 있다. 봉을 지나 중재로 내려서는데 육십령에서 내려오는 대간꾼들과 만난다. 발바닥이 너무 아파 내려서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급격히 내리꼿는 등산로를 지나니 사태지역이 나오고 이내 중재 고개마루다.


구간 : 1소구간 - 중재 → 육십령, 2소구간 - 육십령 → 빼재
거리 : 1소구간 - 19.07㎞, 2소구간 - 32.53㎞
시간 : 1소구간 - 6시간 40분, 2소구간 - 14시간
대원 : 3명, 지원조 2명


중재 → 육십령
09:10 중재마을 → 09:20 중재 → 10:45 백운산 (10 분 휴식 ) → 11:45 영취산 ( 약 20 분간 점심겸 휴식 ) → 14:50 깃대봉 (15 분간 휴식 ) → 16:00 육십령
육십령 → 빼재
03:00 육십령 → 03:50 할미봉 (5 분 휴식 ) → 06:00 장수덕유산 (15 분간 휴식 ) → 07:00 월성재 ( 간단한 아침 ) → 08:30 삿갓재 → 09:30 무룡산 (10 분간 휴식 ) → 11:25 동엽령 → 12:00 백암봉 (10 분 휴식 ) → 13:05 횡경재 (10 분 휴식 ) → 14:25 지봉 (10 분 휴식 ) → 15:30 대봉 → 16:00 갈미봉 → 17:00 빼재


중재 → 육십령
한달만에 다시 대간길에 나선다. 이번 회차엔 고맙게도 지원조 ( 홍현동 , 김민환 ) 가 있어서 한결 마음이 푸근하다. 중재아래 차량진입이 가능한 임도에서 기념촬영과 함께 지원조와 작별하고 중재로 올라선다. 중재에 닿으니 지난 회차때의 감흥은 한달이라는 시간을 넘어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이 번갈아 바뀌며 중고고개를 지나 본격적인 백운산 오름길이다. 고도를 600 미터나 올리는 구간이지만 거리가 길어 대체로 부드러운 편이다. 백운산 정상 직전 고개 마루에 오르면 함양군에서 설치한 인사말이 반갑다 “ 수고 하셨습니다. ” 묘 1 기를 지나자마자 백운산정상이다.

백운산에서 영취산 가는 길은 온통 조릿대 군락이다. 2 미터도 넘는 조릿대 터널이다. 약 200 미터 정도 고도를 낮추지만 길은 두드럽다. 영취산을 400 미터 앞두고 무령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식수가 위급할땐 무령고개 아래서 구할 수 있다. 영취산은 금남호남정맥의 분수령이기도하다. 서쪽으로 장안산이 버티고있다.

대간길은 북쪽이다. 아래로 내려서는 듯하지만 그리 급하지 않고 올라서는 듯하지만 그리 가파르지 않는 부드러운 연봉들의 연속이다. 깃대봉 가기전에 북바위라는 암봉이 왼편에 있는데 반드시 들러볼 곳이다. 북바위에서 장수쪽으로 내려다보면 바람도 시원하지만 논개 생가를 조감할 수 있다.

북바위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이내 억새밭 능선을 오른다. 그나마 가파른 능선이지만 여전히 부드럽다. 민령에 서면 장수 쪽과 함양 쪽길 탈출로가 있다. 이후 깃대봉 까지의 능선도 이렇다 할 특징이 없으며 깃대봉엔 조망 안내도가 흉물스럽게 서있다. 북동쪽엔 내일 오를 할미봉이 뾰족한 바위탑인듯 서있고 그너머 장수덕유와 남덕유산이 소뿔처럼 웅장하다.

깃대봉에서 할미봉을 바라보며 내려섰다가 오른쪽으로 꺽으면 5 분 거리에 샘터가 있다. 정말 꿀맛 같은 물이다. 더운 날 이 샘물은 아마 산꾼들의 구세주가 아닐까 ? 육십령까지의 길엔 동네뒷산 같은 분위기다.


육십령 → 빼재
육십령엔 밑으로 터널이 뚫리면서 너무 조용하다. 이른 새벽 지원조들의 배웅을 받으며 빼재길로 나선다. 약 6 년만에 찾아온 길이다. 어렴풋하나마 기억이 새롭다. 할미봉 바로 아래 암릉을 힘겹게 올라서니 제법 찬바람이 분다. 머리들어 하늘을 보니 별은 왜그리도 많은지 ……

할미봉은 독립봉이다. 지독한 절벽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니 거짓말처럼 길이 부드럽다. 파도처럼 능선을 오르내리다 헬기장을 오르기 전부터 제법 가팔라진다. 계속된 오름길. 고도를 높힐수록 바람은 차갑다. 1400 을 넘어서자 바위지대와 초원지대가 뒤 섞인다. 6 여년전 가을쯤엔 이곳이 온통 야생화로 뒤덮힌 기억이 난다.

장수덕유와 남덕유가 한눈에 들어오는 고개턱에 서는데 마침 붉은 해오름이 떠오르기 직전이다. 두봉 사이로 보이는 바다위 연꽃처럼 오똑선 가야산은 가히 장관이다. 장수덕유산에 오르자마자 일출이 시작된다. 넋을 잃을 만하다. 사방팔방 구름 한점없이 맑은 하늘 … 남쪽 끝머리엔 지리산 연릉이 백두대간의 어머니처럼 넉넉해 보인다.

정상 칼바람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남덕유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철계단에 얼어붙은 사면길로 조심 또 조심한다. 너덜지대를 지나 남덕유정상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월성치로 향한다. 남덕유 오름길이 너무 빙판이라 굳이 밟지 않기로 했다. 월성치 가기전 마루에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고 삿갓재로 향한다.

월성치에서 삿갓재 까지는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굴곡이 심해 지겨운 구간이다. 온통 바위길인 삿갓봉 구간. 그런데 봉이름이 너무 재미있다. “ 봉갓삿 ” 거꾸로 적혀있다. 삿갓봉을 지나 10 여분이면 삿갓재다. 중간 중간에 길이 얼어 있어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삿갓재에서 간단히 목을 축이고 무룡산으로 향한다. 무룡산 오르기 직전에 원추리 밭엔 시들어버린 잎들이 잡초처럼 볼품없다. 여름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 몇 년 사이에 덕유산 주릉길이 너무 많이 훼손되 있다. 국립공원 행정이란 것이 너무 탁상공론이다. 파헤쳐진 흙길을 목책만 세워두면 다가 아니다. 그옆엔 섞지도 않은 실타래들이 그대로 노출되 있는데도 누구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 … 각설하고

하늘엔 구름한 점 없다. “ 萬里無片雲 ” 가을하늘처럼 짙푸르다. 서서히 태양이 뜨거워진다. 그래도 응달엔 여전히 빙판이다. 무룡산을 지나 동엽령까진 대체로 평원길이다. 덕유종주는 지리종주보다 더 힘들다. 굴곡이 심하고 빼재까지의 도상거리도 지리보다 길다. 더 힘든 것은 물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이면 그날이 없어 종주 자체가 극기훈련이다.

동엽령지나 백암봉 오름길은 약 30 분. 여기서 대간길은 지리산의 바래봉을 틀어 꺽듯이 향적봉을 90 도로 돌아선다. 바람도 없는 산행길 … 그리고 누적되는 피로감 …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도 많고 쉬는 회수도 자꾸만 늘어간다. 귀봉이나 지봉 모두 부드러운 봉인데도 어는 것 하나 만만한게 없다.

지봉을 지나 월음령에 내려서니 기운이 다 빠진다. 고개에서 다시 오를 대봉을 보고 있으니 맥이 딱 풀린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고도차가 너무 심하다. 그늘 하나 없는 대봉 오름길. 25 분만에 오른 대봉엔 바람이 시원하다. 저멀리 향적봉 스키장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보인다. 기념촬영 한 컷하고 얼른 갈미봉으로 향한다. 마지막 봉이라 생각하니 기운이 솟는다.

하지만 갈미봉에서 빼재 가는 길도 결코 만만찮다. 시간은 약 1 시간정도 소요되며 급한 내리막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오름봉이 세개나 더 있다. 그래도 사람발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빼재에 닿으니 지원조가 너무 반갑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들머리를 확인하고 이틀에 걸친 산행을 마친다.


구간 : 빼재 → 우두령
거리 : 도상 36㎞, 실거리 40㎞
시간 : 16시간 20분
대원 : 오상기, 황정곤 외 1명


02:00 빼재 → 03:30 덕유삼봉산 → 04:50 소사고개 (10 분간 휴식 ) → 06:10 초점산 (5 분간 휴식 ) → 07:00 대덕산 (10 분간 휴식 ) → 08:20 덕산재 (30 분간 아침겸 휴식 ) → 08:50 출발 → 10:30 부항령 (20 분간 휴식 ) → 12:50 1170 봉 (10 분간 휴식 ) → 14:05 삼도봉 (30 분간 휴식 ) 14:35 출발 → 16:20 1175 봉 → 17:00 석교산 (20 분간 휴식 ) → 18:20 우두령


최근 며칠간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자못 긴장은 되지만 언제나 길을 나선다는게 설레인다. 깊은 새벽녘 빼재까지 태워주신 한우산장 주인 아저씨께 감사드리며 찬바람이 이는 새벽산길을 제촉한다. 칡흙 같은 어둠에 별빛들이 하늘과 산마루를 경계짖고 불면증에 걸린 새들의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온다.

빼재에서 수정봉까지는 초반 오르막을 빼고는 별다른 특징없이 부드럽다. 수정봉을 지나면 성벽처럼 버티고 선 검은 그림자에 흠칫 놀라지만 막상 가까이 붙으니 그리 힘들지도 않다. 덕유삼봉산 정상엔 케른아래에 “ 진달래 ” 라는 시가 한편 적혀있다. 산위에서 바라보는 소사고개엔 좌측으로 전라도 우측으로 경상도 땅이지만 불빛도 마을도 사는 모습도 다 똑같다.

삼봉산을 지나 10 여분 가면 암릉길이 나오는데 아래에서 보면 별들이 바위에 붙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마 저 수많은 별들 만큼이나 한낮의 태양도 뜨거우리라 … 소사고개로 가기 전에 도경계 능선과 만나게 되는데 어둡고 가스가 차면 심중팔구는 길을 잃을 만하다.( 산행이라는 것이 언제나 시야가 트이는 것이 아니므로 주의를 요한다.)

소사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한마디로 절벽을 타는 것과 흡사하다. 무려 560 미터의 고도를 2 키로미터의 거리로 내려선다. 숲이 끝나고 개간지가 나오는데 너무 넓어서 확인할 길이 없다. 깜깜한 밤에 후레쉬 빛도 한계가 있어 그냥 길따라 내려가다보니 목장이 나온다. 다행히 소사고개 바로밑이다.

소사고개에서 지경내까지는 부드럽다. 그런데 행정구역이 엇박자다. 대간능선길 임에도 불구하고 좌측능선 넘어 약 2 키로미터까지는 여전히 경상남도 거창땅이다. 지경내 개간지를 지나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초점산 넘어 동남기슭에는 이미 붉게 타오를것이다.

초점산까지의 오르막은 가파른 듯 하지만 중간중간에 조망을 즐길 수 있어 힘겹지 않다. 정상직전 곱게 꾸며진 묘터에서 바라보는 삼봉산과 그아래 지경마을을 바라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초점산은 경남 , 경북 , 전북을 가르는 삼도봉이기도 하다.

초점산에서 바라보는 대덕산은 참 너그럽게 다가온다. 밟아서 좋은산 , 보아서 좋은산을 구분 짓는다면 대덕산은 둘다 좋다. 대덕산 정상은 그 품만큼이나 넓다. 저 아래 오른쪽 능선중간에 덕산재가 보인며 부항령터널 그리고 삼도봉도 보인다. 까마득한 산마루를 보고 있노라니 현기증이 난다.

대덕산에서 20 여분만 내려서면 꿀맛 같은 샘터가 하나 있다. 대간꾼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다. 이름은 “ 얼음골샘터 ” 정말 얼음처럼 차갑다. 물을 보충하고 덕산재에 내려서니 폐주유소가 황량하다. 무주로 갈때면 덕산재를 자주 이용했었는데 … … 이렇게 걸어서 넘어와 보니 감회가 새롭다.

아침요기를 하고 부항령으로 나서는데 날씨가 심상찮다. 바람한점없고 햇살은 너무 뜨겁다. 드디어 본격적인 더위다. 페이스 오버없이 한걸음 한걸음 떼어 보지만 나무 한그루 없는 구간 구간엔 힘도 빠진다. 부항령 가기직전 100 여미터를 내렸다가 150 미터를 치고 오르니 더위먹을 지경이다.

부항령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날씨가 계속 이렇게 더우면 삼도봉에서 해인부락으로 빠지자고 이야기가 오간다. 일단은 삼도봉까지 시간 지체없이 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지루한 능선길에 아무도 말이 없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갈림길을 지나 다시 능선에 붙으니 어라 ~ 차가운 바람이 끝도없이 불어온다. 차가운 바람 한점이 물한모금과도 같이 가슴속에 시원하다.

고도차가 큰 1770 전망대에 올라서니 바람이 예사가 아니다. 저멀리 첫오름이었던 삼봉산과 대덕산이 뿔처럼 솟아 보이고 덕산재를 지나 이곳까지 능선이 용의 등처럼 힘차다. 이제 삼도봉까지는 한시간 남짓 … 다행히 바람이 시원하고 구름이 가려 한결 수월하다.

목장과 초원지대를 지나면 고만 고만한 봉들이 힘든 걸음에 딴죽을 걸지만 그런대로 봐 줄만하다. 삼도봉 직전 작은 봉에 올라서니 드디어 화합의 탑 까만 여의주가 보인다. 아랫재 사거리에서 곧바로 치고 오르니 드디어 삼도봉 … 충북과 경북 그리고 전북을 가르면서 이제부터 전라도를 버리는 기점이기도하다.

왼쪽으로 석기봉 이 탑처럼 뾰족하다. 약 5 년전 눈밭길을 헤치며 각화산에서 삼도봉까지의 종주길이 생각난다. 삼도봉에서 온길과 갈길을 조망하며 원도 없이 쉬고나니 다시 힘이 솟는다. 다행히 날씨는 시원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제 부터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약 10 키로미터 … 시간은 약 3 시간 30 분 …

삼도봉 직전부터 영 몸이 무겁다. 해인산장으로 내려서고 싶었지만 그대로 진행한다. 밀목재를 지나니 갑자기 비가 흩뿌린다. 바람은 이제 태풍처럼 변해버렸다. 산속의 날씨는 이처럼 변덕스럽다. 비에 젖은 몸에 바람까지 맞으니 한기마저 든다. “ 저체온증 ”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차가운 날씨가 그나마 몸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속도를 점점 높여본다. 물아일체 ( 物我一體 ) 대간과 내가 한몸이 되는듯 …

두령을 300 미터쯤 남겨 놓았을 때 지원조 ( 이재훈 ) 이 마중을 나온다. 시간이 늦어 걱정되어 올라오는 길이란다. 고맙고 반갑다. 어쨌든 너무도 당당히 빼재에서 우두령까지 당일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구간 : 우두령 → 작점고개
거리 : 32.53㎞
시간 : 12시간 05분
대원 : 3명, 지원조2


02:20 우두령 → 03:35 여정산 → 04:55 황악산 착 (10 분간 휴식 ) → 05:05 황악산 출 → 06:00 백운봉 → 06:20 여시골산 → 06:45 궤방령 착 (20 분간 아침식사 ) → 07:05 궤방령 출 → 08:35 가성산 착 (15 분간 휴식 ) → 08:50 가성산 출 → 10:40 눌의산 착 (10 분간 휴식 ) → 10:50 눌의산 출 → 11:25 추풍령 착 (20 분간 점심식사 ) → 11:45 추풍령 출 → 12:05 금산 착 → 12:45 502 봉 (5 분간 휴식 ) → 13:30 사기점 고개 착 (10 분간 휴식 ) → 13:40 사기점 고래 출 → 14:25 작점고개


칠흙 같은 어둠을 불빛으로 가르고 상부마을회관에서 20 여분을 달려 우두령에 도착한 시각이 02:15 분. 지원조들의 도움을 받아 기념촬영을 마치고 제법 쌀쌀한 바람을 안으며 길을 나선다.

충분치 못한 수면이었지만 몸은 가볍다. 약 10 여분을 올라서니 헬기장이다. 어두운 밤이라 주위조망의 즐거움은 없지만 북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북두칠성 , 그리고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으니 밤산행의 묘미라 할만하다.

길은 오르막이지만 부드럽다. 크게 힘쓸 일 없이 경북으로 한발 충북으로 한발 , 도경계를 넘나들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약 1 시간을 올랐을까 제법 고도감을 느끼며 연이은 암릉을 지나니 여정산이라는 작은 정상표지판이 걸려있다. 해발은 1015 미터.

대간은 여기서 남쪽 ( 왼쪽 ) 으로 꺽이다가 다시 북으로 방향을 튼다. 여정산에서 30 여분을 지나니 임도가 가로놓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밤산행의 어려움은 넓은길이 나올 때 가장 어렵다. 독도가 부정확하고 시그날도 기대하기 어렵다. 윗쪽으로 갔다가 다시 원점회귀 , 일단 임도길을 따르다 5 분여를 걸어가니 왼쪽 산길로 시그날이 붙어있지만 방향은 가늠하기 어렵다.

10 여분을 걸어가니 절개지가 나오며 다시 임도길과 만나는곳에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여기가 바람재다. 5 월의 끝자락인데도 새벽의 바람재엔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차갑다. 동쪽으로 김천의 밤야경이 시들어가는 것이 이미 여명이 밝아옴을 뜻함이리라.

이제 황악산 자락이다. 황악산은 일반 산행지로도 이름이 난 곳이어서 등산로 자체가 다르다. 낙엽 하나없이 휑해져버린 반들반들한 길이다. 짐승길이 사람길로 바뀌어져 버린 깨끗한 길을 20 여분 오르니 오른쪽 신선봉 갈림길이 나온다. 황악산 종주길이기도하다. 대간은 직진이다. 갈림길에서 다시 10 여분 오르니 조망이 멋진 형제봉이다.

이미 랜튼이 필요없을 정도로 주위가 환해졌다. 형제봉에서 황악산 가는길은 부드럽다. 중간에 능여계곡으로 빠지는 삼거를 지나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04:54 분 , 오랜만에 찾은 황악산을 대간길에 다시오니 감회가 새롭다.

정상 바로아래 넓은 헬기장을 지나 궤방령으로 힘껏 내닫는다. 길은 더 휑해졌다. 오른편 계곡에 직지사가 있어 탐승객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철쭉나무 군락을 지나고 계단길을 지나고 밴치가 놓여진 안부에 이르니 새벽잠을 잊은 등산객 한사람이 반갑게 인사한다.

길은 직지사를 버리고 백운봉 , 운수봉으로 향하는데 문득문득 해오름이 보인다. 예의 그 시뻘건 계란 노른자 같은 해오름 … 해는 잠든산하에 일출시각을 알리듯 잠시 내밀었다가 영영 보이지 않는다. 한낮의 더위를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다.

이름도 요상한 여시골산을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저멀리 가성산줄기가 성벽처럼 버티며 서있고 그 아래 궤방령엔 차들이 장난감처럼 오고간다. 넓고 넓은 대간밭을 왼편으로 두고 길은 여전히 얕은 숲길로 이어진다.

궤방령에서 가성산 가는길은 본 산자락에 붙기전에 제법 긴 능선을 돌고 돈다. 그래도 사람발길이 뜸해서 산책로 같은 기분이 들고 오르막 또한 가파르지 않는 가성산의 워밍업 구간이라 할 수있다.

418 봉 지난 왼편 영동쪽에 벌목공사가 한창이다. 대간의 숲이 잘려나가고 있다. 작은봉을 몇 개나 오르내리다 마지막 내리막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성산 오름길엔 중간 중간에 조망이 트이는 암릉이 걸려있지만 대체로 부드러운 육산이다.

정상인듯 첫봉에 오르니 표지석도 없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다시 10 여분 , 가성산 정상엔 헬기장도 아닌 것이 시멘트포장이 깔려 있다. 그래도 그렇게 밉지는 않다. 오히려 그늘에 앉아 쉬기가 편하다.

급경사를 10 여분 내려서니 다시 장군봉 오름길. 그러나 짧다. 장군봉에 올라서면 이후로 오르내리는 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내리막 초지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눌의산 능선은 소등처럼 부드럽다.

빽빽한 참나무 숲길을 소풍가듯 가벼운 발거음 , 고도를 유지하며 살짝 올라친 눌의산 능선엔 의미없는 공터가 있고 정상엔 꽤 넓은 정상터가 지나온 대간과 가야할 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북으로 지나는 경부고속도로엔 점점으로 표시된 차들이 충북으로 경북으로 끊임없이 넘나든다.

눌의산에서 추풍령 내림길은 절벽같이 가파르다. 다행히 짧은 가파름이지만 고도를 500 미터나 낮춘다는 것은 결코 만만찮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린만큼 또 올라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대간길은 경부고속도로 추풍령을 굴다리로 이어간다. 다시 포도밭을 돌아 경부선을 조심스레 지나 오른편으로 되올라서니 표지석도 웅장한 추풍령비다. 가을바람 매섭다는 추풍령 고개엔 봄바람이 가슴속으로 시원하다.

도계을 이웃하며 집들이 붙어있지만 굳이 마음으로 가를 필요는 없을것이다.

지금 추풍령엔 공사가 한창이다. 대규모공사다. 길은 넓히고 새로이 다리를 놓고있다. 대간길은 공사장을 가로질러 불구가 되버린 금산으로 향한다. 금산은 이미 온전한 산이 아니다. 절반의 산이다. 영동쪽에서 갉아먹은 산이 정확히 정상을 기준으로 바닥까지 잘라 놓았다.

워낙 돌로된 산이라 그나마 버티고 있지만 결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상부엔 제법 운치있는 바위들이 산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잘려나간 한편엔 포크레인이 마치 암벽을 타듯 곡예를 부리며 굉음을 내고있다.

502 봉으로 가는 길을 내내 따라오던 기계음이 가물거릴 즈음 소나무와 참나무가 잘 어우려진 고즈넉한 숲길이 나오고 부드럽던 능선이 갑자기 가팔라 지면서 10 여분을 땀흘리면 502 봉이다. 이렇다 할 표지도 없는 무명봉이지만 산뜻한 산이다.

이제부터 사기점을 지나 작점고개까지는힘든 오르막도 가파른 내리막도 없다. 오늘 구간을 마무리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간길을 음미하며 사기점 고개에 도착하니 정면으로 난함산이 조개등처럼 곳추 서있다.

대간길은 난함산을 지나지 않는다. 빗살처럼 갈라진 수많은 능선중에 오직 물길을 넘지않는 단 하나의 능선을 꼭지점으로 돌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난함산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냥 북으로 방향을 잡고 비스듬히 틀듯이 길을 가다가 포장길과 숲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다시 숲으로 들어섰다가 절개지 옆으로 내려서면 이내 작점고개다.